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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8.10.02
제목 소토지 보유 북한판 지주 계층 등장-흔들리는 북한 농촌 계급구조

“제가 북한에서 직접 개간해 경작한 땅이 4000평(약 1만 3000 ㎡) 정도 됐습니다. 주변에서 저를 보고 지주(地主)라고 불렀습니다” 함경북도 출신인 김진철(가명)씨는 2013년 탈북 전까지 4000평 넘는 개인 ‘소토지’를 경작했다. 북한에서는 개인이 직접 개간해 관리하는 땅을 ‘소토지’라 부른다. 북한에서 개인의 토지 소유는 불법이지만 김씨와 가족이10년 넘게 주변의 산과 돌밭을 개간해 만든 땅이라고 한다. 김씨는 “여기에 옥수수와 감자·고구마 등 작물을 재배 했고, 농번기에는 인력이 부족해 7~8명의 일꾼을 고용했다”고 말했다.

김씨처럼 북한에서 자체로 개간한 소토지에서 농사 짓는 개인농(農)이 늘고 있다. 김씨가 살던 함경북도 산간 지역에는 1정보(3000평) ~ 5정보(1만5000평)이상의 소토지를 소유한 개인 경작자들이 여럿 생겼다고 한다. 평안남북도와 자강도 지방에는 소토지 10정보(3만평) 이상 가진 지주들도 적지 않다는 증언도 있다. 북한 체제의 특성상 개인농의 정확한 규모는 파악되진 않지만 전국적으로 고루게 분포됐다는 것이 탈북자들의 전언이다. 개인농들이 경작하는 소토지에서 나오는 곡물 생산량이 북한 전체 농업생산량의 20% 이상을 차지한다는 북한 농업전문가의 지적도 있다.

개인 간 소토지 거래도 이뤄지는 것으로 알려졌다. 소토지는 주로 산비탈과 돌밭을 개간한 땅이기 때문에 평당 가격은 그리 높지 않다고 한다. 소토지 거래가 이뤄지는 이유는 농사를 지으려는 목적도 있지만 토지를 투자 자산으로 구입하는 주민들이 있기 때문인 것으로 전해졌다. 북한에서 토지는 모두 국가소유로 되어 있기 때문에 개인들 끼리 매매할 수 없지만 북한 당국의 묵인 하에 암거래로 이뤄지고 있다고 한다. 김일성·김정일 시기 개인농을 통제 하던 북한은 김정은 집권 이후 주민 반발과 곡물 생산 향상 등을 고려해 주민이 직접 개간하고 관리하는 소토지를 일부 인정하는 대신 세금 부담을 가중시키는 방향으로 정책을 전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북한에서 1958년 농업협동화로 사라졌던 개인농 집단이 50여년 만에 다시 부활 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해방후 ‘토지개혁’으로 개인농 형성·지주세력 몰락

북한에서 개인농의 역사는 해방 후 토지개혁으로 거슬로 올라간다. 북한은 해방직후인 1946년 3월 5일 ‘반제반봉건민주주의혁명’의 일환으로 토지개혁 법령을 발표했다. 토지개혁 법령 1조는 “일본인 토지 소유와 조선 지주들의 토지 소유 및 소작제를 철폐하고 토지 이용권은 경작하는 자에게 있다. 북조선에서의 농업 제도는 지주에게 예속되지 않는 농민의 개인 소유인 농민 경리에 의거한다”고 규정했다. 당시 북한은 주민의 74%가 농민이었다. 전체 농가 인구 가운데 지주는 4%로 이들이 소유한 토지는 총 경지면적의 58%를 차지했다. 농가 인구의 약 56%는 소작농(고용농민) 또는 반(半)소작농인 빈농(貧農)이었다. 나머지는 부농과 중농이었다.

토지 개혁으로 몰수된 토지는 총 경지면적의 55%(182만 정보 중 100만 정보)에 달하였다. 특히 5정보 이상 소작 지주는 토지는 물론 가축과 주택까지 몰수한 후 다른 군으로 추방했다. 토지 개혁의 결과 북한에서 지주계급은 완전 청산되었다. 부농 2~3%, 중농 62~63%, 빈농 25%로 농민 구성이 재편되었다. 무상으로 토지를 분배받은 농민들은 생산물의 25~27%을 농업 현물세로 납부했다. 황해도와 평안도 서부 평야 지대에서 상대적으로 미약하지만 지주들의 저항이 있었다.

북한은 지주들의 저항을 누르고 토지개혁을 추진하기 위해 노동자들을 농촌에 파견했다. 노농동맹의 힘으로 지주세력 타도에 나선 것이다. 압박을 견디지 못한 상당수 지주들은 토지 문서를 들고 38선을 넘어 월남했다. 계급투쟁의 성격을 띠고 진행된 북한의 토지개혁은 결국 지주 세력의 소멸을 목표로 했다. 이는 평안남북도 지주 세력을 기반으로 한 북한 기독교 세력, 민족주의 세력의 몰락을 가져왔다. 토지개혁을 통해 대부분의 소작농과 빈농들은 북한 정권의 지지 세력으로 변했다. 해외파 출신인 김일성은 토지개혁을 통해 국내에 강력한 지지세력을 확보할 수 있게 됐다.

◇6·25전쟁 이후 ‘농업협동화’로 개인농 소멸

북한은 한국 전쟁 직후인 1950년대 중반 피폐해진 농민들의 생활을 향상시킨다는 명분을 내세워 토지개혁 때 분배했던 토지를 도로 국가에 귀속시키는 농업협동화를 진행했다. 북한 농촌은 전쟁으로 막대한 피해를 입었는데, 농토가 훼손되고 농기구와 가축도 부족했다. 특히 남자들이 전쟁에 동원되면서 농촌에는 여성과 노인 인력들이 남아 농사를 지었다.

북한당국은 농업협동화의 적기라고 판단하고 협동화를 추진했다. 사실 북한의 농업협동화 조치는 ‘반제반봉건민주주의혁명’ 이후 ‘사회주의제도’를 수립한다는 혁명발전 이론에 따른 것이었다. 그러나 북한 내부에서도 사회주의 공업화 이후에야 농업협동화가 가능하다는 주장과 중공업의 우선 발전과 농업협동화를 동시에 추진한다는 주장이 대립했다. 결국 공업화 이전이라도 농업협동화가 가능하다는 주장이 힘을 얻어 그대로 추진됐다. 북한은 농민들의 저항을 최소화 하기 위해 3단계로 농업협동화를 추진했다. 1단계는 농민들 간 품앗이나 소를 같이 부리는 상부상조 형식으로 진행됐다. 2단계는 농민들의 토지를 합쳐 농사를 짓고, 수확물은 노동의 양에 따른 분배를 기본으로 하면서 토지 출자분에 따른 분배도 병행하는 반(半)자본주의 형태였다. 3단계는 모든 토지와 생산수단을 하나로 통합하고 농민은 노동에 의해서만 분배를 받는 완전한 사회주의 구조였다.

북한은 농업협동화 정책을 추진하면서 빈농에 의거하면서 중농과 동맹하고 부농을 제한하며 점차 개조하는 농촌 계급 정책을 취했다. 협동화 정책에 대해 농민들의 저항은 적극적인 방식보다는 소극적인 방식으로 널리 나타났다. 협동조합에 가입하기 전에 가축을 시장에 내다 팔거나, 토지 일부를 텃밭으로 떼어놓아 따로 경작하는 일이 빈번했다. 텃밭 일 때문에 조합에 결석하는 사례도 수두룩했다. 조합원들이 수확물 분배 이후 조합을 탈퇴해버리기도 했다.

이런 소극적인 저항에도 북한당국의 적극적인 추진으로 농업 협동화는 빠르게 진전되었다. 전후 복구 3개년 계획이 끝난 1956년 말까지 농가의 80.9%가 협동조합에 가입했고, 1958년 8월에는 모든 농가가 협동조합원이 되었다. 농촌의 계층구조도 바뀌었다. 토지개혁 이후에도 농촌 내에 여전히 남아 있던 유력가문의 연장자나 부농, 그리고 남성을 중심으로 한 전통적 권위는 해체되었으며, 이를 대신해서 빈농, 제대 군인, 애국열사 유가족, 인민군 후방가족, 혁명투쟁 경력자, 열성농민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혁명적 농촌 ‘핵심 진지’가 등장했다.

이들은 조합의 간부직을 맡는 등 조합운영의 중심이 되었다. 북한은 토지개혁을 통해 지주 세력을 몰락시켰다면 농업협동화를 통해 개인농을 없애고 사회주의제도를 수립했다. 물론 협동화 초기에는 농업생산성이 향상되고 농민들도 일정한 분배를 받았다. 그러나 북한이 경제건설과 국방건설의 병진노선을 본격화하면서 협동조합이 생산한 식량은 군량미로 우선 공출되고 농민들의 분배 몫은 점점 줄어들었다. 북한은 협동화 이후에도 농민들의 집 텃밭은 300평까지 경작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이 때문에 북한에서 농민은 무산계급인 노동자와 달리 토지를 소유한 소부르조아 계층으로 분류됐다.

북한은 공산주의로 가는 과도기인 사회주의에서 소부르조아 계층인 농민의 존재를 인정하면서도 교양개조 대상으로 규정했다. 즉 협동적 소유는 ‘소상품 생산을 기초로 하는 사적 소유로부터 전 인민적 소유로 발전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불완전한 소유 형태이므로 점차 전 인민적 소유로 전환시켜 나간다’는 것이다. 이렇게 자본주의 마지막 잔재로서의 농민이 노동자화 되면 사회주의가 완성되고 공산주의사회가 된다고 믿었다. 그러나 북한 협동농민들은 북한 당국이 의도하는 공산주의 인간이 되지 못했다.

농사를 힘들게 지어봐야 가을에 차례질 분배 몫이 적기 때문에 협동농장 일보다 개인 텃밭 관리에 더 신경을 썼다. 개인 텃밭에 돈 되는 작물을 심어 농민시장에 나가 팔았다. 북한에선 10일에 한번씩 농민들이 장을 볼 수 있도록 장날을 운영하고 있다. 또 해마다 농사는 전국의 지원자들이 동원돼 짓기 때문에 농민들은 지원자들을 지도하는 역할을 맡았다. 북한에서 농민들이 농사일을 하지 않고 지원자들에게 다 맡긴다고 해서 옥수수 영양단지를 ‘학생단지’로 부르기도 한다. 이렇게 협동농장 운영의 비효율성으로 인해 농민의 생산의욕이 감퇴하고 농업생산성은 갈수록 떨어졌다. 급기야 1990년대 중반 대규모 식량난을 초래하게 됐다.

◇1990년대 중반 ‘고난의 행군’ 겪으며 소토지 개간·당국의 묵인 아래 확장

북한에서 직접 개간한 소토지를 보유한 개인농이 출현한 것은 1990년대 중반 ‘고난의 행군’시기를 겪으면서다. 당시 식량배급의 중단으로 아사(餓死)의 위기에 놓인 농민과 주민들이 산비탈과 돌밭을 개간해 옥수수 등 작물을 심었다. 식량배급을 줄 능력이 없었던 북한 당국은 주민들의 소토지 개간을 묵인해줬다. 이 때문에 개인이 보유한 소토지 규모는 해마다 증가했다.

김씨처럼 많은 평수의 소토지를 소유한 지주들도 생겨났다. 김씨는 “일손이 부족해 협동농장 간부들에게 뇌물을 주고 농민들을 고용해 소토지 농사를 지었다”며 “하루 세끼 밥에 간식을 제공하고, 귀가 할때는 식량을 일당으로 제공했다”고 했다. 이 때문에 소토지가 없는 농민들은 무보수 노동에 가까운 협동농장 일을 기피하고 개인 소토지에서 일하는 것을 선호한다고 한다. 북한은 소토지를 보유한 지주들의 영향력이 확대되는 것을 막기 위해 2000년대 들어 여러 차례 소토지 몰수 계획을 세웠지만 번번히 주민들의 저항에 부딪혀 실현하지 못했다.

대북소식통은 “북한이 산림녹화 명분으로 소토지를 몰수해 거기에 나무를 심으려고 했다”며 “산림 단속반원들이 개인들이 심은 강냉이와 콩을 모두 뽑아버리고 나무를 심었다”고 했다. 그러나 주민들의 반발이 거세자 소토지에 농사를 지으면서 주변에 나무를 심는 임농복합재배 방법을 도입했다고 한다. 소토지를 가진 주민에게 묘목을 공급해 주고 일정 면적에 심어 관리하도록 한 것이다. 소토지를 가진 주민은 번거롭긴 하지만 자신의 토지를 몰수당하지 않고 경작할 수 있기 때문에 당국의 제안을 받아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당국이 소토지 경작을 묵인하면서 소토지 농사는 활기를 띠게 되었고, 나아가 소토지를 거래하는 현상도 보편화 되고 있다.

많은 소토지를 보유한 주민들은 소토지의 일부를 다른 주민에게 빌려주고 가을에 식량을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사실상 북한에서 토지개혁과 농업협동화로 소멸됐던 지주와 개인농이 다시 부활한 것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개인농 세력의 출현은 북한을 무계급 사회로 만들겠다던 구상의 실패를 의미한다. 북한은 김정은 집권 이후 협동농장에서 분조(협동농장의 말단 단위)의 규모를 축소하고 농민에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등 생산성 향상을 위한 다양한 시도를 진행중에 있다. 북한이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 중국식 가족단위 도급제로 발전시킬지 여부도 관심사다. 이 경우 북한에서 소토지를 보유한 개인농은 더 확산될 것이고 협동농장 시스템은 유명무실해 질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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