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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18.12.13
제목 ‘국가제일주의’ 표방하는 북한의 속내는?

사회주의를 표방하는 북한이 최근 ‘우리국가제일주의’라는 새로운 통치담론을 공식 제시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는 김정일이 1986년 7월 ‘우리민족제일주의’사상을 제시한지 32년 만에 김정은에 의해 북한사회의 통치담론이 ‘국가제일주의’로 대체됐음을 의미한다.

이 같은 내용은 북한 사회과학원 정기간행물인 ‘철학·사회정치학연구’ 2018년 2호(5~8월)에 서성일 사회과학원 박사의 논문 ‘경애하는 최고영도자 김정은 동지께서 밝히신 우리국가제일주의에 관한 사상’에 게재됐다. 논문에 따르면 “‘우리국가제일주의’ 사상은 공화국(북한)의 국력과 ‘전략적지위’를 더욱 굳건히 다지고 주체의 사회주의건설위업의 최후승리를 앞당겨 나가기 위한 투쟁에서 군대와 인민이 틀어쥐고 나가야 할 위대한 지침”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이어 “국가를 정치사상강국, 세계적인 군사강국, 과학기술강국, 첨단기술산업이 경제성장에서 주도적 역할을 하는 경제강국, 문명강국으로 만드는 것이 ‘우리국가제일주의’가 내세우는 거창한 국가건설 목표”라고 했다.

◇김정일시대 ‘우리민족제일주의’ 남한과 연계해 국제적 고립 탈피 목적◇

북한은 그동안 김정일이 1986년 제시한 ‘우리민족제일주의’를 통치담론으로 내세웠다. 김정일은 1986년 7월 15일 노동당 중앙위원회 책임일군들과의 담화 ‘주체사상교양에서 제기되는 몇 가지 문제에 대하여’에서 처음 ‘우리민족제일주의’를 제기했다. 당시 자본주의로의 체제전환을 단행한 동구 사회주의 국가들과의 차별화를 통해 북한 주민들의 이념적 동요를 막고 이들을 체제에 결속시키기 위한 민족 우월주의에 근거한 새로운 통치담론이 필요했다는 분석이 제기되고 있다.

또 민족을 매개로 막혀 있던 남한과의 연결고리를 찾아 지원을 끌어내고 국제적 고립에서 벗어나기 위한 전략으로 풀이된다. 1980년대 말 북한에서 봉건시대의 잔재로 배척 받던 민속놀이와 민속음악이 부활하고, 문익환 목사와 임수경 등 남한 인사들의 방북이 이어졌다. 1990년대 초반에는 남북기본합의서와 한반도비핵화선언, 남북한 유엔동시가입 등 남북관계는 국가 관계이면서도 민족이라는 특수관계로 새롭게 규정됐다. 북한의 대남전략인 ‘우리민족끼리’도 여기서 파생됐다.

우리민족끼리 노선은 한국으로부터 경제적 지원을 이끌어 내려는 북한의 ‘빨대전략’으로 한국에 대한‘상호주의’는 없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는 북한이 민족제일주의를 대남전략에 적극 활용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밖에도 북한의 민족제일주의는 한국의 배타적 민족주의 감정을 자극해 ‘한미공조’를 이간(離間) 시키는 역할도 했다. 북한이 통남봉미(通南封美)전략이 대표적이다.

◇김정은시대 ‘국가제일제일주의’ 핵 보유국의 전략적 지위 갖고 경제강국 이루겠다는 구상◇

북한이 32년 만에 ‘민족제일주의’에서 ‘국가제일주의’로 통치담론을 바꾼 것은 많은 것을 의미한다. 특히 북한이 ‘우리국가제일주의’ 사상은 공화국(북한)의 국력과 ‘전략적 지위’를 더욱 굳건히 다지는 것’이라고 밝힌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는 핵무기를 보유한 ‘전략적 지위’를 갖고 경제발전으로 정상국가의 반열에 올라서겠다는 의미로 해석됐다.

북한 노동당 대내기관지 ‘근로자’ 2017년 12월호에는 ‘전략적 지위’의 개념에 대해 “핵을 보유한 자주적인 핵 강국으로서 세계정치 무대에서 전략적 문제들을 주도해 나가는 확고한 지위”로 규정하고 있다. 대북소식통은 “인도나 파키스탄처럼 핵 보유국으로서 미국 등 다른 핵 보유국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겠다는 것”이라며 “북한이 주장하는 비핵화의 개념은 핵군축으로 미국이 요구하는 과거와 현재 미래핵을 모두 폐기하는 비핵화와 의미가 다르다”고 했다.

북한의 국가제일주의는 ‘4·27남북정상회담’ 이후 본격 등장했다. 이는 북한이 문재인 정부가 민족주의를 내세워 남북관계에 접근하는 것에 정치적 부담을 느끼고 거리두기에 나선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되고 있다. 인도적 지원을 받는 구걸 국가의 이미지에서 탈피해 경제강국을 꿈꾸는 김정은에게 남한과의 경제협력은 절실하다. 이를 위해 남한과 경제협력의 연결고리를 만들어야 하는데 남북한 체제의 성격구분을 분명하게 않으면 세습왕조에 위험요소로 작용할 수 있다.

문재인 정부의 ‘한반도신경제지도 구상’은 북한 내륙 지역까지 한국의 자본과 기술이 진출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김정은 집권 후 북한이 발표한 20여개의 경제개발구와 특구 계획도 특정지역 보다 전 지역을 포함하고 있다. 이 때문에 남북경협을 통해 경제적 이익은 극대화 하면서도 정치적 부담은 최소화 하기 위해 민족의 개념보다 국가 대 국가의 개념으로 남북관계를 재정립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판단을 한 것으로 풀이된다. 물론 대남 공작 차원에서의 우리민족끼리는 계속 주장할 것으로 보인다.

◇시장경제 확산에 따른 주민 의식 변화 대처 목적◇

북한이 김정은 집권 7년 차인 올해에 국가제일주의라는 통치담론을 내세운 것은 시장경제 확산에 따른 주민 의식 변화와 무관치 않다. 김정은은 2011년 집권 이후 대외적으로 강경일변도 정책을 이어가면서 내부적으로 시장을 통제하지 않고 허용하는 정책을 폈다. 북한은 김정은 집권 이듬해인 2012년 미국과 맺은 ‘2·29합의’ (핵·미사일 모라토리움)를 파기하고 그해 4월과 12월 인공위성으로 포장한 장거리로켓 발사를 강행했다.

2013년 3월에는 ‘핵·경제병진 노선’을 노동당 노선으로 채택하고 핵·미사일 개발에 전력 질주했다. 김정은 집권 기간 북한은 4차례의 핵실험과 40여차례의 각종 탄도미사일 도발을 강행했다. 이에 국제사회의 대북제재는 가중 되고 북한의 대외적 고립은 심화됐다. 반면 김정은은 내부적으로는 시장을 통제하기 보다 적극적으로 통치에 활용했다. 김정은 집권 이후 종합시장이 북한 전역에 500여개로 증가하고 기업과 협동농장에서도 시장경영 방식을 일부 도입한 것으로 전해졌다.

시장세와 전기세 등 세금을 통한 국고수익도 증가한 것으로 알려졌다. 2017년 초까지 북한 최대 규모로 알려진 함경북도 청진 수남시장에서 장사활동을 했다는 탈북민 김미영(가명)씨는 “수남시장에 매대 수만 1만 6000개가 넘는데 모두 장세(세금)를 낸다”고 했다. 시장의 확산으로 주민들의 의식에도 많은 변화가 생겼다. 최근 서울대통일평화연구원이 2017년과 2018년 북한을 떠난 탈북민 87명을 설문조사한 결과 ‘북한 주민이 일상생활의 가장 큰 고민’을 묻는 질문에 ‘돈벌이’라는 응답자가 55.2%로 가장 많았다.

이 응답은 2015년(47.3%), 2016년(50.0%), 2017년(52.3%)에 이어 매년 2~3%정도 증가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시장을 통해 고수익을 올리는 비율도 증가하고 있다. ‘월 50만원 ~ 100만원 미만 수익을 올렸다’는 비율은 지난해 18.2%에서 올해 20.7%로 증가했다. 이는 집단주의 체제인 북한에서 주민들이 지도자와 국가에 대한 충성심보다 ‘돈벌이’ 등 개인주의 인식이 높다는 것은 세습체제에 불안 요소로 작용한다. 김정은 정권이 붕괴된 사회주의 계획경제를 재건하지 못하는 조건에서 배금주의((拜金主義)와 개인주의에 물든 주민들의 인식을 원상태로 되돌리기에는 역부족이다.

이런 상황에서 국가제일주의로 주민들의 자긍심과 애국심을 고취하면서 내부결속을 다지려는 것이다. 그러나 내수경제의 부분적 성장에도 비핵화와 대외개방이 없는 경제발전은 한계에 부딪힐 수 밖에 없고, 왜곡된 성격을 띤채 잘못된 방향으로 갈 수 밖에 없다.북한 당국은 최근 국제사회의 대북제재 강화 조치에 비핵화를 통한 대외개방 대신 “제재가 100년 동안 이어져도 사회주의 낙원을 세울 수 있다”며 쇄국의 길을 고집하고 있다. 이는 체제유지를 위해 자력갱생의 명분아래 주민들의 노력과 재산을 강제로 동원하는 국가 착취 시스템을 강화하겠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북한의 국가제일주의 의미◇

‘국가제일주의’는 북한이 처음 사용한 용어는 아니다. 2008년 9월 미국 대선 당시 공화당의 존 매케인 후보는 ‘국가제일주의’를 선거구호로 제시했다. 당시 매케인 후보가 내세운 국가제일주의는 국가에 대한 희생과 봉사를 최우선으로 여기는 애국심을 의미한다. 이를 통해 국가를 최우선으로 여기는 매케인의 헌신의 리더십과 봉사의 정신을 강조하려 했던 것이다.

애국심에 기반한 북한의 국가제일주의와 표면상으로는 비슷하다. 북한의 논리에 따르면 ‘우리국가제일주의’는 김정은 집권 이후 애국심의 상징으로 선전되는 ‘김정일애국주의’에 근거를 두고 있다. 북한 국가제일주의 핵심은 지도자에 대한 충성심과 국가에 대한 애국심으로 개인의 무조건적인 희생을 강요한다.

이런 측면에서 북한의 국가제일주의는 호전적인 히틀러의 국가사회주의(나치주의)와 비슷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매들린 올브라이트 전 국무부 장관은 최근 펴낸 저서 ‘파시즘’ 한국어판 서문에서 “한반도를 볼 때 세계에 가장 먼저 보이는 건 파시즘의 가장 해악적인 요소들을 잔뜩 품고 있는 북한의 시스템”이라며 북한을 ‘파시즘 국가’로 규정했다.

올브라이트 전 장관은 이 책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유일한 진성 파시스트’로 묘사하며 사실상 최악의 독재자로 꼽았다. 그는 “북한은 세속적인 ISIS(이슬람국가)”라며 “북한의 파시즘은 가족 사업”이라고 했다. 그러나 북한은 오히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내세운 ‘미국 제일주의’(America First)에 대해 ‘21세기 나치즘’이라고 비난했다.

북한 관영 조선중앙통신은 2017년 6월 27일 ‘21세기의 나치즘 미국 제일주의를 배격한다’라는 제목의 논설에서 “미국 제일주의는 본질에 있어서 역대 미 행정부들이 추구해온 패권주의의 연속판이고 확대판”이라고 비난했다. 국책연구소 관계자는 “북한이 핵무력 완성 이후 갖게 된 자신감을 바탕으로 경제발전을 이루게 되면 남한과 주변국을 향해 지금보다 호전적인 대외정책을 펼 것으로 보인다”며 “국가제일주의 표방은 그 서막으로 볼 수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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